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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읽는 삶
1. 채식주의자
2.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
3. 대온실 수리 보고서
4. 2025년 제70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5.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그거 알아? 김치가 아주 비싸거든. 그래서 한국인 유학생들은 자우어크라우트를 김치 대신 넣고 찌개를 끓여 먹어. 그러면 정말로 김치찌개 맛이 나.❞
❝진짜? 나도 김치 좋아해. 맛있어!❞
❝여기에 액젓이랑 고춧가루만 넣어도 김치랑 맛이 비슷하다니까.❞
❝하하, 독일식 김치네? 꼭 이 집 같다. 우리 둘이 섞인 거지.❞
껄껄 웃는 요나스의 얼굴에서 자우어크라우트 찌개가 겹쳤다. 그런 걸까. 이 집은 자우어 크라우트 찌개인 걸까. 자우어크라우트는 자우어크라우트대로 남을 수 없는 걸까. 나는 포크로 자우어크라우트를 뒤적거렸다. p.57


20대 초반 친구들과 인도에서 1년 가까이 지낸 적이 있다. 그 전후로 주변국인 네팔과 스리랑카를 포함해 2-3번 더 여행을 다녀왔으니 그 당시 내게 인도는 제주보다 가깝고 친근한 곳이다. 10년 전 지금의 동거인과 처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애를 시작할 때도 그가 인도에 배낭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내게 큰 호감으로 다가왔을 정도로 인도는 20대의 내게 선명한 흔적으로 남아 있는 장소이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지만 하나만 이야기해 보자면 쫄면! 아, 새콤달콤 쫄깃한 쫄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이민 가방 안에 고이 넣어간 고추장도 있었고 양배추와 오이 등은 그곳에서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쫄면과 같은 식감의 면을 찾기 어려워 고민하던 어느 날 스파게티가 떠올랐다. 스파게티 면으로 쫄면을 만들어 먹으며 정말 행복했던 그날의 추억. 그리고 양배추김치가 떠오른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인도에선 한국의 배추를 구하기가 어려웠고, 한국 사람들은 김치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 먹는다는 이야기처럼 내가 지냈던 북인도 지역에서는 양배추를 사용했다. 양배추는 배추처럼 김치로 오래 보관할 수 없어서 겉절이 형식으로 적은 양을 만들어 먹었다.

요나스와 같은 친구가 내게도 있었다. 윗집에 살던 안티(aunt의 인도식 발음). 우리가 자신의 딸과 같은 나이라며 살뜰하게 챙겨 주었지만 미묘한 삐걱거림이 있었다. 물통을 들고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집 정수기에 물을 받으러 오는 일이 시작되었고, 같이 사는 친구의 목걸이를 파티에 갈 때 쓰고 싶다며 빌려 간 뒤로 우린 그를 조금씩 피하기 시작했다. 영어와 힌디어 그리고 그 지역의 언어인 벵골어라는 거대한 벽이 우리 사이에 놓여 있었으니 아마 내가 안티를 그리고 안티가 나를 오해했던 많은 일 중에는 서로의 진심이 전달되지 못해 벌어진 일도 많았을 것이다. 안티가 집에 초대해 만들어 주었던 달밥(조를 끓이고 갈아서 만든다. 밥에 뿌려 먹는다. 인도말로‘달’이라고 부르고, 나는 달밥이라고 불렀다)과 카레가 정말 맛있었는데… 요나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안티를 떠올린다.

처음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 음식때문에 당황했던 적이 많다. 길거리에서 파는 간단한 군것질에서도 향신료가 가득했고, 지내던 공간에서는 식사 시간마다 이웃들이 만드는 각종 향신료 향이 진동을 했다.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가는 일은 언제나 모험이었고, 시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애써 사 온 식재료들은 반 이상이 내가 찾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곤 했다.
“알루 원 케이지(감자 1kg)” 시간이 흘러 간단한 장보기는 수월해졌고 익살맞은 눈짓으로 조금만 깎아 달라는 한국인 특유의 농담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만두, 수제비와 비슷한 티베트 음식인 모모와 뚝바 그리고 중국식 볶음국수인 쵸민의 맛있음을 알게 되었다. 히말라야 설산을 바라보며 다질링(세계적인 차 생산지. 내가 살던 지역의 옆 동네였다) 찻잎을 우려 레몬과 비정제 설탕을 듬뿍 넣어 호호 불어 마셨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오뚜기 카레만 있던 나의 작은 카레 세상이 넓어진 일, 엄마가 해주시는 밥이 아닌 스스로 밥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일(심지어 냄비로…), 인종 차별을 겪은 일 그리고 외국에서 여행이 아닌 살아보는 경험을 했던 일도 모두 인도에서 내가 만난 처음이었다.
그 처음의 마음을 떠올리며 읽었다. 누군가에겐 이 책이 작고, 귀여운 안내서가 될 수도 있겠지. 일러스트와 함께 실린 간단한 레시피 중에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은 카다멈 커피! 겨울이 지나가기 전에 책방 음료 메뉴에 향신료를 가득 넣은 짜이도 꼭 넣어야지.

작은 삶을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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