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 김치가 아주 비싸거든. 그래서 한국인 유학생들은 자우어크라우트를 김치 대신 넣고 찌개를 끓여 먹어…

대온실 수리 보고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해방 이후 한국에 남아 있던 일본인에 관한 내용이 있어 놀라고, 반가웠다. 몇 해 전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라는 책을 통해 잔류 일본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한정현 작가님의 책들을 통해 재일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만났다. 내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주제가 언제나 그렇듯이 책이 계기가 되어 광복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에 한동안 깊이 빠져 있었는데, 관련된 책과 자료들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졌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마주하며 역사와 근현대사를 바로 아는 것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개개인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계속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나의 개인적인 고민과도 연결된 지점이 있었다.
옮겨서 적고 싶은 문장이 많아 필사 노트를 가득 채웠다. 정서경 작가님이 “어떻게 이런 대사를 쓰지?”라고 쓰신 추천사에 고개를 끄덕끄덕. 김금희 작가님의 책 중 가장 아끼는 책이 될 것 같다. 창경궁 대온실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은 흥미진진했고, 주인공이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는 작가님 특유의 다정함으로 이끌어 주셔서 따라 읽는 내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위로가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내게 책을 추천했던 이의 이야기처럼 새해를 시작하며 마음을 매만지며 읽기 좋은 책이다. 건물을 수리하듯 무너진 기억과 마음도 그렇게 차곡차곡 다시 쌓아 올리는 새해를 기대한다.
그리고 나도 창경궁 대온실에 가고 싶어졌다. 아마도 이 책을 만난 많은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
돌아보면 항상 어떤 장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삶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어야겠다 싶은 장소들은 아예 발길을 끊어서 최대한 망각할 수 있게 노력해왔지만 이 일을 맡으면 그곳에 대해 생각하고 더 알게 될 것이었다. 거기에는 일년 남짓의 내 임시 일자리가 있었고 600년 전에 건축된 고궁이 있었고 잊지 않으면 살 수 없겠구나 싶어 망각을 결심한 낙원하숙이 있었다. p.17
저 나이 때는 철든 아이가 가장 괴로운 법이었다. 많이 보고 느끼고 알게 되니까. p.60
“(…)사는 게 말이야, 영두야. 꼭 차 다니는 도로 같은 거라서 언젠가는 유턴이 나오게 돼. 아줌마가 요즘 운전을 배워본 게 그래.”
“유턴이요?”
“응, 그러니까 돌아올 곳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알고 있으면 사람은 걱정이 없어. 알았지? 잘 왔다, 잘 왔어.” p.66
“너무 마음 아파하지는 말자.”
내가 산아에게 말했다.
“너무 마음이 아프면 외면하고 싶어지거든. 아까 우리도 말했지? 너무를 조심하자고.“ p.122
누군가에게는 그런 것이 너무 어려웠다. 슬프면 슬프다고, 상처가 있으면 상처가 있다고, 더날까봐 두려우면 두렵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p.195
수리를 통해 보강되어가는 대온실처럼.
기억은 시간과 공간으로 완성하는 하나의 건축물이나 마찬가지였다.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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