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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의 편지

나경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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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지로의 여름」을 보기 위해  독립영화관인 ‘소소아트 시네마’에 다녀왔어요. 대전 아트 시네마, 소소 아트 시네마, 씨네인디유. 대전에는 3곳의 독립 영화관이 있어요. 곧 걷기 좋은 계절이 시작되니 산책 겸 다녀오시길 추천합니다.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볼 때 집중이 어려운 요즘인데,  오랜만에 스크린 앞에서 오롯이 집중한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새삼스럽게 ‘아, 이래서 영화관에 오는구나’ 생각했어요.

이번 주 내내 영화만큼이나 유명한  OST를 반복해서 듣고 있어요. 혹시 편지를 읽고 있는 지금, 음악이 궁금하시다면 편히 이야기해 주세요. 머무시는 동안 들으실 수 있도록 준비해 드릴게요.  

영화의 줄거리를 짧게 이야기해 볼까요.

할머니와 함께 도쿄에 사는 마사오. 여름 방학이 되자 친구들은 모두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납니다. 함께 놀 친구가 없어 상심한  마사오는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떠났다는 엄마의 주소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림일기와 방학 숙제를 배낭에 넣고 무작정 엄마를 찾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멀리 떠나기도 전에 불량배들에게 돈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되고, 다행히도 이웃 아줌마와 아저씨를 만납니다. 사연을 듣고 난 아줌마는 전직 야쿠자인 자신의 남편에게 마사오를 맡겨요. 그렇게 9세 마사오와 52세 철없는 아저씨 다케다의 엄마 찾기 여름 여행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철딱서니 없는 다케다 아저씨로 인해 여행 내내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아요. 아내에게 받은 교통비로 경륜장에 가서 도박을 하고, 요금이 비싸다는 이유로 택시를 훔쳐 달아나고, 호텔에서 머물고 난 후 돈을 내지 않고, 음식을 훔치고… 이렇게 적기만 해도 두통이 생길 것 같은 다케다의 어이없는 행동들에도 이상하게 자꾸만 맥없이 웃게 되더라고요. (물론 진지하게 웃지 못하는 장면들과 대사도 있어요. 아주 오래전에 나온 영화라는 것을 감안하고 흐린 눈으로 본 장면들도 있었습니다!)

큰 반전이 없는 영화는 한여름 날씨처럼 느리게, 느리게 흘러갑니다. 여행길에서 만난 다양한 어른들이 마사오를 위해 각자의 최선을 다하는 장면도 그리고 영화 초반에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울상이던 마사오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주 웃는 모습도 반가웠어요. 처음엔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다케다 아저씨가 마사오의 여름 방학에 함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121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가 있었습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뛰어가며 활짝 웃는 마사오를 보며 그제야 저는 마음을 놓고 조금 울었습니다. 마사오가 이번 여름에 겪은 일과 앞으로 그가 어른이 되기까지 마주해야 할 수많은 여름을 생각하니 갑자기 너무나 먹먹하더라고요. 일본에서는 1999년에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에 개봉했다고 하니 영화 속의 마사오도 이제는 어른이 되었겠지요?

마사오도 그리고 저와 이 글을 함께 읽는 00님도 여름을 지나오느라 애썼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제철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번 여름은 정말이지 지독하게 더워서 계절의 한복판에 있을 때는 ‘‘여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 여름도 지나고 나면 그리운 순간들이 있겠지요?

영화를 보던 날은 입추였어요. 집에 오는 길 거짓말처럼 시원한 바람이 반가워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들으며 동거인과 손을 잡고 기분 좋은 산책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 저녁은 앞으로 제가 오래도록 그리워할 여름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년 9월 한쪽가게 나경 드림.

작은 삶을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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